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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6 아버지와 딸 6 - 야이로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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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 작성일 : 19-10-31 16:43
  • 조회 : 3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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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딸 6

야이로의 딸(막 5:21-24), 찬송: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성경안에는 많은 치유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은 야이로의 딸이 주님의 은혜로 고침받은 내용을 봅니다. 여기에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야이로, 딸, 그리고 주님이십니다.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세 사람입니다. 신분도 달랐습니다. 야이로는 당시 회당장이었고, 주님은 이제 겨우 전도 사역을 시작한 시골출신 랍비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갈릴리 근처에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은 지역에 소문이 났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배를 타고 이동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이때에도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주님은 바닷가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21절). 주님에게서 세 가지를 배웁니다. 열정입니다. 바다를 건너시면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열정을 배웁니다. 큰 무리를 맞이하시는 사랑을 배웁니다. 도움을 주거나 돈을 주는 이들이 아닙니다. 다만, 어려운 로마의 식민지 시대에 종교적으로 마음을 채우지 못한 사람들이 찾아온 것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 받아주십니다. 어느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가르치시는 모습을 배웁니다. 바닷가에서도 가르치시고, 산비탈에서, 회당에서, 거리에서, 산에서 가르치십니다. 

 

아버지 야이로: 야이로의 집을 먼저 봅니다. 그 가정의 어려움입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이로가 주님앞에 나아오는 행동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는 회당장으로서 사회적 지위와 신분, 명예와 위신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딸의 죽음에 직면하자 살리기 위해 주님 앞에 나옵니다. 야이로의 집뿐 아니라 우리들의 가정을 보십시오. 겉모습은 아무 일도 없는 듯, 행복한 듯하여도 거기에 어둡고 짙은 그늘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자식들로 인한 문제와 어려움, 아픔과 절망은 어느 가정에나 있으며 그것의 어려움은 큽니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자리는 대단히 무겁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와서“발 아래 엎드리어,”“간곡히 구하여,”“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하고 간청하였습니다(22~23절). 요즘 말로 표현한다면“아빠의 용기”입니다. 그야말로“딸 바보”입니다. 야이로에게는 사랑과 겸손과 간절함과 기도의 믿음이 있습니다. 

 

딸: 본문에서 딸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믿음의 기도와 주님의 응답 덕분에 살아납니다. 딸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실때 딸은 그저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 걸었습니다(42절). 여기 등장하는 딸은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이 할 일은 없습니다. 그저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것 뿐입니다. 

 

주님: 본문에서 주님은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야이로의 집으로 오시기 전에 열 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그 집안으로, 눈물과 슬픔, 탄식과 절망, 병과 죽음의 자리에까지 계속 이동하시며 나아가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36절)”하시며, 떠들고 울며 심히 통곡하는 자들을 꾸짖으시고 야이로 회당장의 집에 들어서시며(38절), 아이 있는 곳까지 가시며(40절),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한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십니다(41절).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파격적이고, 도전적입니다. 병들어 죽은 아이나, 죽은 아이에 대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행동이나 전통이나 문화적 행태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35절). 이는 곧 예수께서 권능, 은혜와 사랑, 생명의 주관자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에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 딸, 자녀에게 주님이 계셔야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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